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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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뒤에 숨겨진 진실, 뉴질랜드와 한국의 긴급차량 과속 이야기

뉴질랜드지회 박춘태 기자

사이렌이 울리며 도로 위를 가르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길을 비켜 선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생명이 실려 있고, 시간과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이렌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바로 긴급차량 운전자들의 과속 벌금 문제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긴급차량이 받은 과속 벌금은 총 6,335건에 달했다. 이 중 약 4분의 1은 실제 납부되었고, 나머지는 긴급 출동으로 인정돼 면제 처리됐다. 언뜻 보면 당연한 결과 같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긴급차량 운전자의 고충과 제도의 한계가 드러난다.

가장 많은 과속 위반을 기록한 것은 경찰이었다. 무려 4,118건 중 68%가 면제됐다. 반면, 구급차는 1,897건 중 무려 96%가 면제 처리됐다. 생명을 다투는 환자를 이송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소방청이다. 불길 속으로 달려가는 소방차는 318건의 위반을 기록했는데, 면제율은 단 26%에 불과했다. 결국 나머지 대부분은 운전자가 직접 벌금을 부담해야 했다. 불길을 잡으러 가는 길에, 혹은 복귀 중에 시속 10km라도 초과했다면 고스란히 개인 책임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명감과 개인적 부담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시민을 지키기 위해, 불길을 막기 위해 밟은 가속 페달이 때로는 법의 잣대 앞에서 무거운 벌금 고지서로 돌아온다.

한국 역시 긴급차량의 과속은 빈번하다. 다만 한국에서는 긴급 출동임이 명백할 경우, 과속 위반은 대부분 면제된다.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가 출동 중임을 증명하면 면책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적 인식과 도로 문화에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긴급차량의 길 터주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는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범칙금이 부과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내가 조금만 가면 되니까”라며 양보하지 않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긴급차량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중앙선을 넘거나 과속을 해야만 한다.

즉, 한국은 벌금 문제보다 시민의식의 부족이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길을 내어주지 않는 순간, 그 피해는 환자나 화재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반면 뉴질랜드는 시민들이 비교적 잘 비켜주지만, 제도의 엄격성이 운전자 개인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벌금과 면제의 문제가 아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사회(S) 영역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사회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긴급차량 운전자는 단순한 ‘운전자’가 아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안전망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벌금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제도보다는 국가나 기관이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무분별한 과속은 억제해야 하지만, 공익적 사명을 수행하는 순간까지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의 회피라 할 수 있다.

또한 환경(E) 측면에서도 시사점이 있다. 긴급차량이 불필요하게 과속을 반복한다면 이는 안전과 탄소 배출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일 수 있다. 뉴질랜드가 2023년 말부터 비상등을 켠 차량에 대해서는 아예 위반 통지서를 발부하지 않도록 규정을 바꾼 것은, 불필요한 행정 절차와 갈등을 줄이려는 의미 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는 재외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사이렌이 울릴 때 대부분의 차량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 주는 장면은 공동체가 생명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모습이다. 동시에 이러한 경험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차이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남는 교훈이 있다. 그것은 사이렌이 울릴 때 시민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곧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법과 제도의 균형이 필요하다. 긴급 상황임이 입증된 경우에는 제도적으로 운전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불필요한 개인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한국은 제도보다는 인식이 문제다. 길을 열어주지 않는 단 한 대의 차량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 차 안에 실려 있는 것은 단순한 환자 한 명, 불길 속의 재산 한 채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고 공동체의 안전이며 언젠가 내 자신이 될지도 모를 존재라는 것을.

뉴질랜드의 수치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생명을 살리려는 순간, 과속은 과연 범죄일까?”

한국의 현실은 다시 묻는다.
“사이렌을 듣고도 길을 내주지 않는 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결국 답은 법과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사이렌이 울릴 때 우리는 법전에 적힌 의무보다 더 큰 책임, 즉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뉴질랜드와 한국, 두 사회 모두가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길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진정한 사회적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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