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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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한민족의 지혜, 한반도 평화와 공동성장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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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지회 박춘태 기자

재외동포로서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민족의 삶을 바라볼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국경을 넘어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재외동포는 단지 고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정치와 경제, 문화와 제도 속에서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 온 한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다.

오늘날 한반도는 다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남북 간 대화는 사실상 멈춰 있고 군사적 긴장과 상호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안보 질서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평화는 상황이 좋을 때만 이야기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대화가 끊기고 불신이 깊어질수록 평화를 위한 새로운 통로를 찾아야 한다. 정부 간 공식 외교가 막혀 있다면 민간과 문화, 학술과 경제, 그리고 세계 각지의 재외동포 네트워크가 또 다른 연결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계 한민족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계 각국에 정착한 한민족은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 왔다. 어떤 이는 기업인으로 현지 경제에 기여하고 있고, 어떤 이는 학자와 교육자로 지식의 교류를 이끌고 있다. 언론인과 문화예술인, 과학자, 의료인, 공공 분야 종사자 등 활동 영역도 다양하다. 이들이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는 단순한 개인적 인맥을 넘어 대한민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귀중한 사회적 자본이다.

이제 세계 한민족의 연대가 지향해야 할 방향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민족이 서로 만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각 지역에서 축적한 네트워크를 연결해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뉴질랜드의 역사는 갈등과 공존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된 이후 영국 왕실과 마오리 사이에는 조약 해석의 차이와 토지 문제를 둘러싼 깊은 갈등이 이어졌다. 무력 충돌과 토지 몰수, 문화적 억압의 역사는 오랜 불신을 남겼다. 조약이 체결됐다고 해서 곧바로 화해가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뉴질랜드 사회가 선택한 길은 과거를 덮는 것이 아니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1975년 와이탕이 심리원이 설립되면서 조약 위반과 역사적 피해를 공식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정부와 마오리 공동체는 오랜 협상과 논의를 거쳐 토지와 자원, 문화적 권리와 관련한 문제들을 하나씩 다뤄왔다.

물론 오늘날에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사회적 격차와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갈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합의를 기다리기보다 제도를 만들고 대화를 이어가며 조금씩 신뢰를 축적해 왔다.

한반도 평화 역시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불신을 정상회담 몇 차례나 합의문 하나로 해소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대화의 통로를 완전히 닫지 않는 일이다. 작은 교류와 협력이 쌓이고 그것이 제도와 관행으로 정착될 때 비로소 공존의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재외동포는 독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재외동포는 대한민국과 거주국이라는 두 공간을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현지 사회의 언어와 문화, 제도를 경험하면서도 한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공유한다. 이러한 경험은 국제사회에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고 다양한 의견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강점이 될 수 있다.

특히 공공외교 분야에서 재외동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한반도 문제는 국제사회의 이해와 협력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오세아니아,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각국의 정치인과 언론인, 학계와 시민사회에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을 꾸준히 알리는 일은 정부 외교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현지 사회에 뿌리내린 재외동포가 그 역할의 일부를 담당할 수 있다. 거창한 외교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세미나에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고, 현지 언론을 통해 평화의 필요성을 알리며, 문화행사에서 한국의 역사와 현실을 소개하는 일도 공공외교다. 지역사회 지도자와 시민단체, 기업인들과 구축한 신뢰 역시 장기적으로 중요한 외교 자산이 될 수 있다.

언론 네트워크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인 언론인과 동포 기자들은 현지 사회와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정보의 가교다. 한반도 문제를 단순히 남북 간 군사적 대립으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 공동성장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면 국제사회의 인식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재외동포의 역할은 크다.

뉴질랜드는 작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국제 교역과 다자협력을 통해 극복해 온 나라다. 세계 여러 국가와 경제적 연결망을 구축하고 자유무역협정을 확대하면서 자국 기업과 상품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반도의 공동성장 역시 장기적으로 국제적 협력 구조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 언젠가 남북 간 경제협력이 다시 시작된다면 단순한 지원이나 일회성 사업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산업과 기술, 환경과 에너지, 농업과 교육 분야의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한민족 기업인과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연결자가 될 수 있다. 각 나라의 시장과 제도를 이해하고 국제 비즈니스 경험을 갖춘 동포들이 지식과 네트워크를 공유한다면 한반도 공동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차세대 동포의 참여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와 다른 시각으로 한반도를 바라본다. 이들에게 분단과 통일은 때로 멀게 느껴지는 주제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구호와 방식만으로 참여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와 인권, 기술과 인공지능, 문화와 콘텐츠, 지속 가능한 발전과 같은 세계적 의제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세대 동포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관심 분야를 통해 한반도의 미래와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세대와 지역, 전문 분야를 잇는 글로벌 한민족 협력 플랫폼이 필요하다.

만남이 끝난 뒤 명함만 남는 교류여서는 안 된다. 지역별·분야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언론인은 글로벌 한민족 언론 네트워크를 만들고, 학자들은 공동 연구를 추진하며, 기업인들은 경제협력 모델을 논의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과 차세대 동포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세계 시민에게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재외동포를 단순한 지원의 대상이나 행사 참가자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세계 각지의 한민족은 대한민국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이며 동시에 세계 속에서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보고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필자는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일이 얼마나 긴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지를 보아왔다. 와이탕이 조약 이후 오늘의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갈등도 있었고 반발도 있었으며 지금도 논쟁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대화의 제도를 만들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은 한반도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반도의 평화공존 역시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지금의 교착이 엄혹할수록 대한민국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동시에 세계 각지의 한민족은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에서 쌓아 온 경험과 신뢰, 지식과 네트워크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서울과 평양만 바라보아서는 한반도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때로는 오클랜드와 뉴욕, 도쿄와 베를린, 시드니와 런던,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민족의 삶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찾아야 한다.

흩어져 있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회에서 축적한 경험을 연결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한민족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세계 한민족의 연대가 바로 그 연결의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만남을 넘어 협력으로, 교류를 넘어 실천으로 나아갈 때 세계 한민족의 지혜와 네트워크는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을 향한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한반도가 불신의 벽을 넘어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날, 세계 곳곳에서 살아온 한민족의 작은 노력들이 그 길을 만드는 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믿으며, 세계 한민족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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