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모란봉 앙상블, 갈리나 한 초대 단장 헌정 공연 성료
- 신현권
- 38
- 12-10
고려인 문화의 전통을 잇고, 새로운 세대를 향해 펼쳐진 헌정의 무대
[타슈켄트= KIC 신현권]
2025년 12월 7일, 타슈켄트 한국문화예술의 집에서 고려인 예술을 대표하는 모란봉 앙상블이 초대 단장 갈리나 한을 기리는 특별 헌정 공연을 펼쳤다.
고려인 공동체의 문화적 뿌리와 전통을 계승해 온 앙상블이 선배 세대의 정신을 오늘의 예술로 재탄생시킨 뜻깊은 자리였다.
이번 공연은 ‘유산(Наследие)’을 주제로 고려인 예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이어질 미래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여자’, ‘Arirang’, ‘Flowers’, ‘소고춤(Соро)’ 등 한국적 정서를 담은 작품들과, 음악 그룹 Ligas 및 Freedom Family가 참여한 현대적 무대가 조화를 이루며 고려인 문화가 지닌 깊이와 확장성을 표현했다.
작품들은 독립된 이야기처럼 구성되어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단원들의 진정성 있는 표현과 생동감 넘치는 음악, 절제된 안무가
어우러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후반부에 펼쳐진 ‘모란봉 피날레’는 모든 출연진이 한 무대에 올라 고려인 공동체가 오늘까지 이어온 문화적 자부심과 연대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모란봉 앙상블은 1997년 시르다리야에서 갈리나한에 의해 창단된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 예술의 정체성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010년 창립자의 별세 이후에도 단원들은 스승이 남긴 전통과 정신을 지키며 활동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모란봉은 고려인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특히 ‘모란봉’이라는 명칭을 북한의 모란봉악단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우즈베키스탄 모란봉 앙상블은 북한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초대 단장이 남긴 이름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현 단장 타티야나 틴은 한국인들의 많은 오해속에서도 “이름을 바꾸지 않는 것이야말로 고려인 문화의 연속성을 지키는 길”이라며 명칭 계승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와 함께 타티야나 틴 단장의 성(姓) ‘틴(Tin)’ 역시 한국의 전통 성씨가 아닌,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에서 형성된 고유 성씨라는 점도 주목된다.
1937년 스탈린 강제이주 시기, 수십만 명의 고려인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되면서 러시아 행정 체계 속에서 이름과 성씨를 잃거나 새롭게 부여받는 일이 빈번했다.
‘틴’이라는 성도 이러한 역사적 변화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또한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겪어야 했던 아픈 역사의 한 조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성씨는 고려인 후손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 정체성을 이어가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타티야나 틴 단장은 전통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을 접목하여 새로운 예술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에서도 고려인 문화의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서사를 완성했다. 단원들의 움직임과 표정에는 고려인 조상의 삶과 희망이 녹아 있었고, 이는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다만 이번 공연에서 몇 가지 아쉬움도 지적되었다.
일부 의상은 전통 한국 의상과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어 한국 전통무용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었으며, 몇몇 장면에서 무대 배경이 한국 풍경이 아닌 일본풍 이미지로 연출된 점은 고려인 예술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표현하기에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러한 부분은 향후 공연에서 한국적 요소와 고려인 문화의 고유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개선 방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란봉 앙상블의 이번 헌정 공연은 고려인의 문화가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숨 쉬는 예술임을 확인시켜 준 의미 있는 무대였다.
앙상블은 앞으로도 고려인의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세대와 세계에 그 가치를 전하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2027년은 스탈린 정권에 의해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지 90주년이 되는 해다.
1937년의 비극은 수많은 고려인들에게 언어·문화·이름·고향을 잃게 한 아픈 역사였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슬픈 역사를 품고 살아온 고려인 공동체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고려인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과
연대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필자 또한 이번 모란봉 공연을 계기로 고려인 문화예술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공연의 마지막, 타티야나 틴 단장은 무대 위에서 다음과 같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친애하는 손님들,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
오늘 이렇게 저희를 응원하러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 따뜻한 미소, 그리고 뜨거운 박수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공연은 특별한 분, 갈리나 미하일로브나 한 선생님께 바치는 무대입니다.
그녀는 우리 모란봉 앙상블
발전의 기초를 세워주신 분이며, 저희는 오늘 또 한 장의 새로운 모란봉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길을 혼자가 아니라, 제 옆에서 함께해 주는 저희 단원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그들은 제 날개이고, 제 힘이며, 가장 큰 영감의 원천입니다.
또한 고려문화협회 박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고 우리의 공동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신 총 연출 엘라 몰라코바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말뿐만 아니라 춤으로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오늘, 그리고 오늘만, 여러분을 위해 모란봉
앙상블이 춤을 바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