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오클랜드의 선택, 그리고 한국이 마주한 질문. 한민족 공동체의 성찰
- 박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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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1

뉴질랜드지회 박춘태 기자
도시는 늘 변화를 요구받는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더 나은 교육을 찾아, 혹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는 언제나 ‘집’이다. 그러나 주거 문제는 단순히 특정 도시만의 과제가 아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해외 동포 사회 또한, 각자의 도시 속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한 도시의 선택은 다른 도시와 공동체, 나아가 세계 한민족에게도 중요한 성찰의 거울이 된다.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가 최근 내린 결단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응답이었다. 카운슬은 18대 5라는 압도적 표결로 대중교통 허브 주변에 10~15층 고층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는 주택 밀집화 계획, 이른바 ‘Plan Change 120’을 통과시켰다. 기존의 3층 중심 개발안(Plan Change 78)을 넘어선, 훨씬 과감한 결정이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미 오클랜드에 향후 수십 년간 최대 200만 채의 신규 주택 공급 능력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집이 없다는 절망, 집값 상승에 따른 좌절은 이제 젊은 세대의 삶을 옥죄는 가장 큰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 시장은 “결정을 미루면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고, 결국 카운슬은 선택했다. 이는 도시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분수령이다.
물론 모든 이가 박수만 친 것은 아니다. 일부 시의원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주택 수용력을 설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비판했고, 주민들 역시 반발했다. 특히 세인트 메리스 베이 주민들은 “15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역의 역사적 풍경이 사라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는 결국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다. 집이 절실한 사람에게는 한 채의 아파트가 삶을 바꿀 희망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 지역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마을 풍경과 역사, 그리고 삶의 기억이 지워지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오클랜드 카운슬의 선택은 바로 이 딜레마 위에서 내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의 대도시는 이미 ‘고층화’의 길을 오래전부터 걸어왔다. 서울을 비롯한 광역시 곳곳에는 20층, 30층은 물론, 50층을 넘는 초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섰다.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한국은 단기간에 수백만 채의 아파트를 공급했다.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이름 아래 낡은 주택들은 빠르게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 하늘을 찌를 듯한 아파트 단지들이 세워졌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누리게 되었지만, 동시에 지역 공동체와 전통적 도시 풍경은 급격히 사라졌다.
한국의 청년 세대는 지금도 집 문제로 고민한다. 집값은 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했고, “내 집 마련”은 평생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청년 원룸, 신혼부부 특별공급 같은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체감 효과는 여전히 부족하다. 오클랜드가 이제 막 선택한 고밀도 개발의 길을, 한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걸어왔고, 그 결과와 문제들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오클랜드의 결단은 한국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고층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할 때,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가?” 한국의 도시들은 이미 높은 건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공동체를 지켜냈고, 얼마나 역사적 풍경을 존중했는가.
반대로 한국의 경험은 뉴질랜드에 또 다른 질문을 건넨다. “급격한 고층화는 결국 어떤 문제를 낳는가?” 한국은 이미 경험했다. 주민 간의 단절, 공동체 해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지, 그리고 결국은 또다시 집값 상승이라는 역설까지. 오클랜드가 지금 신중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두 나라가 함께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사람을 중심에 둔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 단순히 몇 층을 허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교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층 아파트라 해도, 열린 공원과 지역 커뮤니티 센터, 보행 친화적 거리를 함께 설계한다면 ‘콘크리트 숲’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을’이 될 수 있다.
둘째, 역사와 정체성 보존이다. 한국은 재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과 동네 풍경을 잃어버렸다. 뉴질랜드는 그 길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 지역은 반드시 보존해야 하고, 개발 속에서도 역사적 맥락을 담아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셋째, 교통과 환경과의 조화다. 뉴질랜드 정부는 교통망 주변의 고밀도 개발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대중교통 허브와 연계된 주거지는 자동차 의존도를 낮추고, 환경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한국 역시 이미 지하철 역세권을 중심으로 고밀 개발을 이어왔지만, 동시에 교통 혼잡과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교훈을 남겼다.
넷째, 주민 참여와 소통이다. 오클랜드 주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충분한 참여와 논의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발은 행정의 결정이 아니라, 주민과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또한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갈등을 줄이는 유일한 길은 투명한 절차와 진정성 있는 소통뿐이다.
도시는 건물의 집합이 아니다. 그 안에서 웃고 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오클랜드가 내린 고밀도 개발 결정은 단순히 아파트 몇 층을 더 높이 쌓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세대가 어떤 삶의 공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한국은 이미 고층화의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얻고, 또 많은 것을 잃었다. 이제 오클랜드가 그 길의 문턱에 서 있다. 서로 다른 길 위에서 두 나라는 서로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성찰은 단지 한국과 뉴질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민족 공동체 역시 각국의 도시와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함께 목격하고 있다. 미국의 대도시, 유럽의 역사적 도시, 아시아의 신흥 도시에서도 한인 사회는 ‘집’이라는 같은 고민 앞에 서 있다. 오클랜드의 논의와 한국의 경험은 곧 해외 동포 사회에도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은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국경을 넘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것. 개발과 보존, 효율과 공동체, 속도와 품격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은 곧 전 세계 한민족이 함께 품어야 할 과제다.
도시는 늘 변화를 요구받는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더 나은 교육을 찾아, 혹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는 언제나 ‘집’이다. 그러나 주거 문제는 단순히 특정 도시만의 과제가 아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해외 동포 사회 또한, 각자의 도시 속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한 도시의 선택은 다른 도시와 공동체, 나아가 세계 한민족에게도 중요한 성찰의 거울이 된다.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가 최근 내린 결단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응답이었다. 카운슬은 18대 5라는 압도적 표결로 대중교통 허브 주변에 10~15층 고층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는 주택 밀집화 계획, 이른바 ‘Plan Change 120’을 통과시켰다. 기존의 3층 중심 개발안(Plan Change 78)을 넘어선, 훨씬 과감한 결정이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미 오클랜드에 향후 수십 년간 최대 200만 채의 신규 주택 공급 능력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집이 없다는 절망, 집값 상승에 따른 좌절은 이제 젊은 세대의 삶을 옥죄는 가장 큰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 시장은 “결정을 미루면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고, 결국 카운슬은 선택했다. 이는 도시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분수령이다.
물론 모든 이가 박수만 친 것은 아니다. 일부 시의원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주택 수용력을 설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비판했고, 주민들 역시 반발했다. 특히 세인트 메리스 베이 주민들은 “15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역의 역사적 풍경이 사라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는 결국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다. 집이 절실한 사람에게는 한 채의 아파트가 삶을 바꿀 희망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 지역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마을 풍경과 역사, 그리고 삶의 기억이 지워지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오클랜드 카운슬의 선택은 바로 이 딜레마 위에서 내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의 대도시는 이미 ‘고층화’의 길을 오래전부터 걸어왔다. 서울을 비롯한 광역시 곳곳에는 20층, 30층은 물론, 50층을 넘는 초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섰다.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한국은 단기간에 수백만 채의 아파트를 공급했다.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이름 아래 낡은 주택들은 빠르게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 하늘을 찌를 듯한 아파트 단지들이 세워졌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누리게 되었지만, 동시에 지역 공동체와 전통적 도시 풍경은 급격히 사라졌다.
한국의 청년 세대는 지금도 집 문제로 고민한다. 집값은 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했고, “내 집 마련”은 평생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청년 원룸, 신혼부부 특별공급 같은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체감 효과는 여전히 부족하다. 오클랜드가 이제 막 선택한 고밀도 개발의 길을, 한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걸어왔고, 그 결과와 문제들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오클랜드의 결단은 한국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고층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할 때,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가?” 한국의 도시들은 이미 높은 건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공동체를 지켜냈고, 얼마나 역사적 풍경을 존중했는가.
반대로 한국의 경험은 뉴질랜드에 또 다른 질문을 건넨다. “급격한 고층화는 결국 어떤 문제를 낳는가?” 한국은 이미 경험했다. 주민 간의 단절, 공동체 해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지, 그리고 결국은 또다시 집값 상승이라는 역설까지. 오클랜드가 지금 신중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두 나라가 함께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사람을 중심에 둔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 단순히 몇 층을 허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교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층 아파트라 해도, 열린 공원과 지역 커뮤니티 센터, 보행 친화적 거리를 함께 설계한다면 ‘콘크리트 숲’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을’이 될 수 있다.
둘째, 역사와 정체성 보존이다. 한국은 재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과 동네 풍경을 잃어버렸다. 뉴질랜드는 그 길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 지역은 반드시 보존해야 하고, 개발 속에서도 역사적 맥락을 담아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셋째, 교통과 환경과의 조화다. 뉴질랜드 정부는 교통망 주변의 고밀도 개발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대중교통 허브와 연계된 주거지는 자동차 의존도를 낮추고, 환경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한국 역시 이미 지하철 역세권을 중심으로 고밀 개발을 이어왔지만, 동시에 교통 혼잡과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교훈을 남겼다.
넷째, 주민 참여와 소통이다. 오클랜드 주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충분한 참여와 논의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발은 행정의 결정이 아니라, 주민과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또한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갈등을 줄이는 유일한 길은 투명한 절차와 진정성 있는 소통뿐이다.
도시는 건물의 집합이 아니다. 그 안에서 웃고 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오클랜드가 내린 고밀도 개발 결정은 단순히 아파트 몇 층을 더 높이 쌓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세대가 어떤 삶의 공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한국은 이미 고층화의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얻고, 또 많은 것을 잃었다. 이제 오클랜드가 그 길의 문턱에 서 있다. 서로 다른 길 위에서 두 나라는 서로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성찰은 단지 한국과 뉴질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민족 공동체 역시 각국의 도시와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함께 목격하고 있다. 미국의 대도시, 유럽의 역사적 도시, 아시아의 신흥 도시에서도 한인 사회는 ‘집’이라는 같은 고민 앞에 서 있다. 오클랜드의 논의와 한국의 경험은 곧 해외 동포 사회에도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은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국경을 넘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것. 개발과 보존, 효율과 공동체, 속도와 품격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은 곧 전 세계 한민족이 함께 품어야 할 과제다.